ܹ Ѽӱȸ


θ޴


޴

ȸ, ȸ߰ڷ ٷΰ

  • ȸȳ
  • ȸ߰ڷ

ӱ X

Ȩ > ӱ > ӱ X


글보기, 각항목은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첨부파일, 내용으로 구분됨
<국회입사>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작성자 주정순 작성일 2004. 4. 4. 조회수 3126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주 정 순(국회사무처 속기2과3담당)


"만약 이번에 안 된다면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직장에 다녀야만 할 것이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가족들 보기가 부끄러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종 2차 발표일인 자정이 다가올 무렵부터 나는 손발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자정이 됐다.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봐 달라고 언니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수험번호는 01038, 언니! 만약 나 떨어졌으면 전화하지 말고 붙었으면 연락해 줘!"
10분 뒤에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설마설마 했는데 안 됐나 봐, 어떻게 하나……"
별의별 생각들이 다 스치고 지나갔다. 허탈감, 좌절감……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드디어 15분 뒤 전화가 왔다. 접속이 잘 안됐다나……
와우! 드디어 내가 해냈다.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내가 한없이 자랑스러웠고 밤새 졸린 언니를 붙잡고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털어 내느라 날이 새는 줄 몰랐다.

IMF가 시작되고 98년 2월 졸업한 나는 6개월여 동안 취직을 하지 못하고 직장을 구하러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서야 가까스로 구한 중소기업. 그러나 수출도 잘 되고 꽤나 탄탄한 회사였다.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셨고 열심히 다니길 원하셨다. 그런 회사를 몇 달 다니다 이게 아닌 듯 싶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 속기라는 일에 꽤나 흥미가 있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니는 동안 학원에서의 진도도 꽤 빨랐고 선생님들께서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난 더욱 열심히 했고 드디어는 부모님께 다른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관두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 어려운 시기에 회사나 열심히 다닐 것이지 새로운 것을 배워서 언제 또 취업을 할 것이냐며 부모님께서 우려가 크셨고 반대하셨지만 난 이번만큼은 내 뜻대로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태껏 항상 부모님 말씀에 순종적이었던 내가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했는지, 어디서 회사를 관둘 용기가 생겼을까? 아마 그때 부모님 말씀대로 그냥 회사만 다녔다면 지금쯤 마지못해 다니는 직장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일견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진다.

2000년10월19일 1년의 업무 중 제일 힘들다는 국정감사가 시작되었다.
선배님들로부터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난 무척 긴장했고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까지 했다.
내가 속한 곳은 재정경제위원회였다. 첫날부터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 가뜩이나 떨리는데 그것도 지방으로 가다니…… "난 할 수 있다"라는 다짐을 수십 번 하고 나서야 조금은 진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3개 기관에다 기계와 그 밖의 부속품들을 가지고 시간에 쫓기면서 뛰어다닌 국정감사 첫날은 그야말로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어 주저앉고만 싶었다.
'이래서 선배님들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셨구나!"
이튿날, 아직도 서툴고 미숙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힘들어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첫날보다는 좀 나았다. 소속의원들의 성향이나 말투에 익숙해지면서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하루하루 날짜가 보태지면서 몸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회의의 무게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속기라는 일에 조금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동기들과 전화 통화로 한참동안 넋두리를 한 후에야 조금은 내 마음은 진정될 수 있었고 우리는 같이 고생하자며 격려를 해주었다.
"동기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휴……"
일에 지쳐서 기계처럼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가끔 뉴스에서 나를 보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는 회의장에서 나를 좀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국감이 진행되는 동안 그만큼 내 어깨도 조금씩 무거워졌다.
"속기라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로구나."
내가 한 자 한 자 기록하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고 내가 만든 원고가 한 나라의 정치 쟁점화가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만큼 일에 책임감이 더해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국감기간 중 담배인삼공사에 국감을 나갔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백 명의 농민들이 담배인삼공사의 민영화를 반대하며 난생 처음 뉴스가 아닌 현장에서 우리 버스를 가로막으며 항의하는 농민들의 절실한 모습에 나 또한 더욱더 엄숙해져갔다.
마침내 담배인삼공사의 국정감사가 시작되고 방금 전까지 절실히 외쳐대던 농민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기록하는 이것이 곧 역사의 산물임을 생각하니 의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더욱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일간의 첫 국정감사는 많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배운 것이 참 많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입사 초에 나는 이제 국회에 들어왔으니 "나는 국회 속기사야"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정한 속기사는 단지 말만을 빠르게 기록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빠르고 정확히 기록함은 물론 회의내용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회의진행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앞으로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니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또한 첫 국정감사는 내가 국회 속기과의 새내기 속기사로서 한 일원임을 온 몸으로 실감케 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첫 국정감사를 무사히 마친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생각된다. 특히 처음에 내가 속한 계의 선배님들과 많이 낯설었는데 국정감사를 다녀온 후에는 한솥밥을 먹는 가족 같은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국정감사 기간 동안 막내로서 한없이 미숙하고 서툰 나를 잘 이끌어 주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신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선배님들, 앞으로 더욱더 많이 가르쳐 주세요. 아직 미숙하지만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지적해 주시고 저도 빨리빨리 배워서 2001년 국정감사때에는 지금보다 몇 배 더 나아진 모습으로 선배님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막내가 되겠습니다."
선배님들 모두 힘내시고요!
화이팅!


@속기계 3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첨부
  •     

ּ ó, 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