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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천냥 주머니와 무죄 증명
작성자 속기계 작성일 2004. 4. 4. 조회수 2938
<특별기고> 천냥 주머니와 무죄 증명

옛날에 네 사람의 장사치가 돈 천냥을 모아 한 주머니에 넣고 그 돈으로 물건을 사러 길을 떠났다. 산 중턱에 이르러 주막이 눈에 띄므로 갈증도 풀겸 해서 그곳에서 잠시 쉬는데, 돈 주머니가 아무래도 맘에 걸렸다. 안전하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주인 아주머니에게 돈 자루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잘 들으시오. 우리들 네 명이 같이 달라고 하기 전에는 절대 내주면 안됩니다."
이윽고 술상이 나오고 네 사람이 번갈아 잔을 돌리며 흥겹게 먹고 마시는데, 그 중 한 명이 돈에 탐욕이 생기는지라 자리를 일어서면서 일행에게 이렇게 물었다.

"머리가 엉망인데 누구 빗이 없는가?"
"사내들에게 무슨 빗이… 아마 주인집 여자에게 물어보면 빗쯤 없겠나?"
자리에서 일어선 장사꾼은 곧바로 부엌에 들어가 주인 여자를 찾았다.
"돈 주시오."
"일행과 같이 오지 않으면 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장사꾼은 술을 마시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주인여자가 내주지 않는다네. "
그러자 일행은 빗을 내주지 않는 줄로만 알고 다시 소리쳤다.
"내주시오."
사나이가 주인 여자로부터 돈자루를 받아들고 줄행랑을 쳤음은 물론이다.
이상은 우리의 전래 유머로 전해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한데 이 이야기는 다음 대목에 가서 또다른 반전을 이룬다.
술상을 비우고 동료 오기만을 기다리던 남은 일행은 주인댁으로부터 그 사나이가 돈을 들고 내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판 싸우는 내용이 이렇다.

"(돈을) 내주라고 했쟎아요?
"누가 돈을 내주랬소? 빗을 주라 했지…"
"그 양반은 빗이란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마침내 관가까지 간 이 사건은 '주인여자의 잘못이니 돈을 물어주라'는 사또의 명으로 일단락짓게 된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주인 여자가 겨우 발걸음을 떼어 집으로 향하는데 동네 어귀에서 놀던 꼬마가 묻는다.

"아줌마, 왜 그래요?"
철도 안든 어린애의 말이라 지나치려는데 아이가 또다시 묻는다. 결국 자초지종을 털어놓고만 주인 여자.

"그럼 좋은 수가 있어요. 엿 사먹을 돈 한냥만 준다면요."

그러면서 아이가 하는 말이,
"네 사람이 같이 오기 전에는 돈 자루를 내주지 않기로 약속하였으니, 네 사람이 같이 온다면 돈주머니를 돌려주겠다고 하세요."
주막집 여자는 그 길로 사또에게 달려가 앞서의 '조건'을 제시한다. 사또가 가로되 "그대들과 이 여자 사이에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
"그렇다면 그대들은 같이 가서 달아난 한 사람을 잡아 데리고 오너라."

전래 유머는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이같은 '무죄 선고' 장면을 끝으로 '천냥'과 맞먹는 지혜의 가치를 우리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는 길어졌지만, 결론은 한 가지. 진실을 찾아내는 지혜의 힘, 이는 사실에 의해 더욱 그 힘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진실된 힘이 무섭다는 것을 진정 아는 사람이라면 일차적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기록의 과정에 대해서 무한한 존엄과 가치를 느끼게 된다. 사실을 남기고 전함으로써 진실된 역사와 만나는 작업, 속기란 것에 대해서도. '천냥 주머니'의 지혜가 꽃필 수 있었던 것도 비록 구두이긴 하지만 사실이 현장에서의 사실 그대로 정확히 전해질 수 있었던 상황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옛날 옛적의 이 이야기를 현대라는 시점에 놓고 떠올려본다면 과연 어떠할까? 주막집 여인과 장사꾼들의 희비(喜悲)를 바꾸어놓은 동네 꼬마의 지혜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물론 시대가 바뀌어도 '지혜의 얻음'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만 이같은 단서 한 가지를 붙일 수 있다면. 네 사람이 함께 와 청할 때만 돈을 내주라 하고, (빗을)달라 해서(돈을) 내주고…, 하는 행위를 문서로 남겨놓는 확인 작업만 따라준다면.
속기는 바로 이런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 위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2년 전인가,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난 것을 기억한다. 「기록의마술사-'귀하신 몸'됐다」 지방 자치시대를 맞아 속기사가 최고의 인기 직종으로 빛을 보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었다. 그 무렵 해서 '가정 부업' 또는 '달리는 여성'등의 부제를 달고 '속기사'라는 직업이 매스컴에 꽤 많이 등장했었다.
과연 속기는 왜 필요하며, 속기에 업(業)을 둔 사람들은 어떤 세계에서 살까, 잠깐 스치는 생각으로 속기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마감 때면 어김 없이 '억지속기인'이 되어 후다닥 원고를 넘겨야하는 업을 지닌 까닭에.
한 여성 속기인은 직업인으로서 십여년간 해온 속기에 대해 한계를 느끼는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속기업무에 임할 때마다 엄습해 오는 긴장감과 2-3시간 연속 속기후의 정신적 육체적 피곤, 각종 사투리 신조어 전문용어 외래어와의 씨름, 치솟는 물가와는 상관 없이 늘 답보상태인 속기 용역비, 그리고 요즘같이 첨단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대에 과연 속기가 미래의 직업으로 얼마나 효용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지 매우 염려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기의 '정체'를 좀더 파헤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데 그칠까. 비록 비전문가이긴 해도 단연코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흐르는 강물을 한 순간에 정지시키는 '정지 화면'의 기능처럼, 속기는 모든 인간의 행위를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고정 확보해놓는 작업을 우선으로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속기와 녹음기와는 무엇이 다른가? 21세기의 첨단 기술은 인간의 음성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는,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을 현실로 증명할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속기의 위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잠깐 앞서의 '천냥 주머니'를 다시 펼쳐보기로 하자. 이 옛 이야기에서 만약 화자(話者), 즉 주막집 여인이 없었다면 사실이 지혜의 힘을 빌려 위력을 나타내는 스토리 전개는 전혀 불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다. 만약 녹음기로 문자를 따내 이야기를 풀었다면 제2부에 속하는 반전의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으리라.

속기는 바로 이 점에서 녹음과 다르다고 본다. 왜냐하면 속기사는 옛이야기에 나오는 주인집 아주머니와 같은 존재, 실감(實感)의 존재인 것이다. 더불어 기(記)에 기(氣)를 넣어 우리의 삶을 빛내는 사람들의 작업, 속기가 있는 한 사실은 진실로 세상에 그 위력을 넓혀갈 수 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자료 : 속기계- 이영아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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